회암사지 출토 유물 중 '청동 금탁(靑銅 金鐸)' 가장 학술 가치 지녀
'이방석' 이름 금탁에 새겨 순조로운 '왕위 계승 기원' 목적 제작 추정

 

 
양주 회암사지 [ 양주시 ]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양주 회암사지는 우리나라 폐사지(廢寺址) 중에서도 가장 잘 보존된 상태로 발굴된 절터로 알려져 있다.

 

약 1만 평에 달하는 규모로 절터 전체가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여서 다른 절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전문가들은 명종 대에 유생들에 의해 강제로 폐사(廢寺)돼 승려들이 불도를 닦던 장소의 변형이 거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회암사지 출토 유물 중에서 가장 학술적 가치를 지닌 것은 보광전 터에서 출토된 청동제(靑銅製)의 금탁(金鐸)이다.

 

금탁은 처마 끝에 매달아 바람이 불면 소리를 내게 만든 작은 종인 '풍탁(風鐸)'이다.

 

사료에 따르면 이 풍탁을 '금탁'이라 불러 '청동 금탁'이란 명칭을 얻게 됐으며, 그 소리는 거문고에 견줄 만 했다고 전해진다.

 

'청동 금탁'은 모두 2점인데 하나는 보광전 북동쪽 모서리 아래 박석 상부에서, 다른 하나는 북서쪽 모서리에서 출토됐다.

 

북동쪽 모서리에서 출토된 금탁은 비교적 양호하지만, 북서쪽 모서리에서 출토된 금탁은 상·하단 중 하단부만 복원 가능한 정도다.

 

 
청동 금탁 [경기문화재단]

 

금탁은 크게 본체와 건물에 매달게 하는 연결부, 바람에 흔들려 소리가 나도록 하는 부속구로 구성됐다.

 

'청동 금탁'이 회암사지 출토 최고의 유물로 평가받는 이유는 본체에 새겨진 146자의 명문 때문이다.

 

2단으로 된 본체 상단에는 '왕사묘엄존자(王師妙嚴尊者) 조선국왕(朝鮮國王) 왕현비(王顯妃) 세자(世子)' 순으로 우에서 좌로 15자의 명문이 음각으로 위에서 아래로 쓰여 있다.

 

하단에는 모두 131자의 명문이 음각으로 4자씩 우에서 좌로 종서(縱書) 돼 있다. 이를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천보산에 있는 회암사 보광전 네 모퉁이는 금벽으로 화려하게 꾸미어 천궁보다 훌륭해 금탁을 달아 놓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 바라네. 또한 작은 티끌 같은 중생들이 그 소리를 듣고 부처님의 본심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가 이 신묘하고 아름다운 연기를 받들어 조선의 국호가 만세에 전해지도록 하소서. 전쟁(우과于戈)이 영원히 그쳐서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고 마침내 같은 인연의 깨 달음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 홍무 27년[1394] 갑술 6월 -

 

이 명문에서 '왕사묘엄존자(王師妙嚴尊者)'는 무학대사, '조선국왕(朝鮮國王)'은 이성계, '왕현비(王顯妃)'는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 씨, '세자(世子)'는 이방석을 말한다.

 

공덕자가 판내시부사 이득분인 점으로 미뤄 네 사람의 만수무강 등을 축원하기 위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청동금탁 명문세부 [경기문화재단]

 

'공덕주 가정대부 판내시부사 이득분(功德主 嘉靖大夫判內侍府事 李得芬)'이란 명문도 주목된다.

 

功德主 嘉靖大夫判內侍府事 李得芬 施主 貞信宅主許妙淨 咸陽郡夫人朴妙湛 寧順宅主 朴氏 ?(?)城翁主尹氏 檢校門下侍中 李崇

 

(공덕주 가정대부 판내시부사 이득분 시주 정신택주허묘정 함양군부인박묘담 영순택주 박씨 협(?)성옹주윤씨 검교문하시중 이숭)

 

이는 이득분 주도하에 금탁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우왕에게 총애를 받았던 구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 5월 8일 현비의 병환이 위독하자 이득분의 집으로 옮겼고 태조가 이득분의 집을 찾았다", "태조 5년 8월 13일 현비가 이득분의 집에서 사망하자 임금이 통곡하며 슬퍼했다", "정종 1년 이득분이 불사佛事를 행하도록 권하여 창고를 탕진시켜 죄를 물었다" 등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득분이 신덕왕후와 특별한 사이였고, 불교계의 한 축이었기에 '금탁불사'를 책임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금탁의 명문은 첫째, 회암사가 태조의 즉위와 함께 대대적으로 지어진 사실을 전한다. 중심건물인 보광전이 1394년에 완성된 것은 조선 건국과 함께 회암사 불사가 바로 시작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둘째로 이득분은 결국 조선개국의 주체세력이기보다는 오히려 부원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며, 불교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구세력이며, 신덕왕후 강 씨의 비호를 받은 인물로 추정된다.

 

그의 존재는 이성계가 신진사대부뿐만 아니라 구세력 불교 세력을 제거하지 않고 조선 건국에 참여시켰을 개연성도 보여준다.

 

 
회암사지 사리탑 [양주시]

 

청동 금탁이 직경 30cm에 달하는 대형으로 일반적인 풍탁보다는 월등히 커 이는 보광전의 규모를 유추케 하며, 왕실 사찰인 회암사의 격을 말해준다.

 

무학대사의 칭호가 국왕인 이성계보다 앞에 자리하는 점도 흥미롭다. 무학대사와 이성계와의 특별한 관계와 당시 무학대사의 위상을 점칠 수 있게 한다.

 

이성계와 현비 강 씨는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서둘러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데, 이는 이방원과 건국세력 일부의 강한 반발의 원인이 된다.

 

이방석의 이름이 금탁에 새겨진 점을 미뤄 이방석의 순조로운 왕위계승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했을 것이란 상상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청동금탁'은 우리에게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하고, 역사적 상상을 더하게 하며, 회암사지 출토품 중에서 가장 학술성이 높은 평가로 꼽힌다.

 

 
속동문선(효령대군 사리탑 건립 관련 기록) [ 양주시 ]

 

한편, 양주시립 회암사지박물관은 연말연시를 맞아 회암사지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오는 31일까지 '대가람의 루미나리에' 행사를 연다.

 

회암사지박물관 광장 일대에 화려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루미나리에를 설치, 회암사지 유적 경관조명과 함께 다채로운 문화체험을 느끼리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 광장에 8m에 달하는 대형 트리와 조명 벤치, 다양한 형태의 조형물 등을 설치해 낭만적인 겨울 분위기를 연출해 지역 관광명소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조선 전기 석조미술의 극치로 불리는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의 보물(제2130호) 승격 지정을 기념하는 특별전도 내년 2월 20일까지 양주시립 회암사지박물관 기획전시설에서 진행한다.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은 1464년 효령대군이 회암사에 연 원각 법회를 계기로 건립한 진신 사리탑이다. 회암사 폐사 이후 훼손과 함께 탑 일부가 무너져 방치됐으나 광복 직후 회암사 스님과 지역 주민들에 의해 복원됐다.

 

 
회암사지 부도탑 [ 양주시 ]

 

1974년 '회암사지 부도탑'이라는 이름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된 이후, 1999년 발굴·해체 복원조사, 2012년 보존처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리탑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보존상태도 양호하며 사리탑 형식과 불교미술의 도상, 장식 문양 등 왕실불교 미술 요소를 알려주는 귀중한 승탑(僧塔)이다.

 

진신사리탑 가운데서도 그 가치가 매우 커 지난해 6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 지정됐다.

 

박물관 측은 "회암사지 사리탑은 조선 전기 승탑형 불탑의 대표작으로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다"며 "조선시대 석조미술의 정수이자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사리탑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라영철 기자 ktvko258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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