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디자인기자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40대 집주인 박모씨는 중개 보수(복비)를 아끼기 위해 지인과 직거래로 전세계약을 맺기로 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아파트로 전세 보증금은 3억원이다. 중개 보수는는 집주인과 임차인 각각 90만원씩(상한요율 0.3%·부가세 제외) 총 180만원이었다. 온라인에서 표준임대차계약서를 내려받아 서류 작업을 마무리했지만 '복병'이 생겼다.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전세대출은 주택금융공사(주금공)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 SGI서울보증 등 보증기관의 보증이 있어야 은행에서 대출을 해 준다. 그런데 일부 보증기관에서 '공인중개사 중개를 받고 확정일자가 있는 임대차계약서'가 있어야 보증을 해주고 있다. 이 조건을 충족할 수 없는 직거래는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박씨는 서류 한장 때문에 수백만원의 복비를 낼 수밖에 없었다.

 
"공인중개사 도장 찍힌 임대차계약서 있어야 대출 가능"
 
8일 금융권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박씨의 사례처럼 복비 부담을 덜기 위해 직거래로 전세계약을 맺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전세대출이 나오지 않아 사실상 직거래는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직거래를 하면 전세대출이 안 나오니 임차인이 본인돈 몇 억씩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결국 공인중개사 도장을 받기 위해 복비 수백만원을 써야하는 꼴"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은행은 전세대출이 사실상 보증기관의 보증을 담보로 취급하는 상품이어서 개인 간 거래인 직거래에 대해선 대출을 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세대출은 따로 담보를 잡는 게 없어서 보증서를 담보로 대출을 내주는 것"이라며 "그런데 보증기관에서는 개인 간 거래에 대해 보증을 해주지 않아 은행에서도 대출을 해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증기관에서 보증을 해 줄 때 공인중개사의 직인이 찍힌 임대차계약서를 요구한다. HUG와 SGI서울보증은 보증조건으로 '공인중개사가 확인(날인)한 전세계약', '중개업소의 중개를 받고 확정일자가 있는 임대차계약서'를 명시하고 있다. HUG 관계자는 "전세계약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공인중개사의 날인이 찍인 전세계약서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두 기관 모두 전세계약 갱신을 할 경우에는 최초에 부동산을 통해 계약서를 썼다면 계약갱신 때에는 직거래가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주금공 "직거래도 된다"지만 은행은 "못 믿겠다"..금융위 "불합리한 부분 있는지 보겠다"
 
 
보증기관 3곳 중에서 주금공은 직거래에 대해서도 보증을 서준다. 주금공 관계자는 "고객들의 중개수수료 부담 완화 등을 위해 공인중개사 날인이 없어도 전세자금보증을 취급하고 있다"며 "임대인이 자필 서명한 임대차계약사실확인서, 국토교통부의 부동산거래 전자계약시스템상 진위확인서비스, 공증 등을 통해 임대차계약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금공에서 직거래에도 보증을 취급한다고 하지만 은행은 여전히 몸을 사리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금공은 공인중개사 날인 조건이 없다고는 하지만, 개인 간 거래에 대한 리스크는 여전해 대출을 내어 주지 않는다"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주금공에서 대위변제를 해주겠다고 명확하게 밝혀야 취급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직거래는 계약서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실상 대출이 불가능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증기관은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보증기관과 은행의 설명대로라면 직거래는 모두 거부해야 하는 것인데, 계약서가 진짜인지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셋값이 올라 서민의 부담이 큰 상황에서 무조건 수백만원의 복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 불합리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방윤영 기자 by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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