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사격, 사전에 투입계획 세우는 적극적 공격행위
"인정되면 발포명령자 규명에도 한발짝 더 다가설 듯"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가 지난 4월27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동으로 들어서고 있다.

 

전씨는 1년여 만에 광주지법에 다시 출두했지만 '5·18 학살'에 대한 사죄는 없었다. 2020.4.27/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광주=뉴스1) 전원 기자 = 전두환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헬기사격이 전씨에 대한 혐의 입증은 물론 자위권 발동 등 1980년 5월 실체 규명과도 연계돼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1일 광주지법 등에 따르면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의 심리로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 선고기일이 11월30일 오후 2시 광주법원 법정동 201호 법정에서 열린다.

 

선고기일에는 전씨가 출석해야 한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3월11일 전씨는 첫 공판기일에 출석해 헬기사격을 부인했다. 재판부 변경으로 지난 4월 27일 다시 재판에 출석한 그는 "내가 알고 있기로는 당시에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똑같은 주장을 했다.

 

검찰은 전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검사는 "목격자와 함께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일빌딩 감정결과 등을 볼 때 1980년 5월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밝혔다.

 

반면 전씨 측은 헬기조종사들의 증언 등을 이유로 "헬기사격은 허구다. 1980년 5월 헬기에서는 단 한발의 총알도 발사된 적이 없다. 그것이 역사적 진실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양측이 헬기사격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 이유는 헬기사격이 인정돼야 혐의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명예훼손과는 달리 사자명예훼손의 경우 사실을 적시할 때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즉 헬기사격이 있었는데도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나 사탄 등으로 적시했다면 범죄가 인정되지만 헬기사격이 없었다면 사자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헬기사격의 여부는 40년 동안 밝혀지지 않고 있는 신군부의 발포 명령 여부와도 관련돼 있는 등 5·18민주화운동의 실체 규명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전씨 등 신군부는 계엄군의 발포가 시민군에 맞선 '자위권 발동' 차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시민군이 먼저 공격을 했기 때문에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발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헬기사격이 이뤄진 경우라면 이 자위권 발동이라는 논리가 무너지게 된다.

 

헬기사격이 있기 위해서는 사전에 헬기 투입계획을 세우고 무장을 해야 한다. 전씨의 재판에서 헬기사격이 인정된다면 계엄군 관계자 중 누군가가 명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헬기가 출동해 사격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게 된다.

 

또 시가지 상공을 비행 중인 헬기 조종사들이 시위대 때문에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가능성이 낮았던 만큼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자위권 발동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 된다.

 

여기에 공중에서 이뤄지는 일방적 공격인 헬기사격은 군이 시민들을 적으로 본 적대적 전투행위의 상징이다. 이에 군에서 시민들의 저항이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총을 쐈다는 자위권이라는 논리가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헬기사격이 인정여부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그동안 군에서 주장하고 있는 자위권 발동이라는 논리가 무너지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동구 금남로와 전일빌딩 주변에 헬기가 떠 있는 것을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5·18기념재단 제공)2017.1.12 /뉴스1 © News1

 

이어 "비무장한 시민들을 향해 헬기에서 총을 쐈다는 것은 시민들이 너무 강하게 저항해서 어쩔 수 없이 총을 쐈다는 자위권 행사 주장에 정반대되는 것으로, 시민을 상대로 한 적대적 전투행위의 상징이다"며

 

"특히 헬기사격은 사전에 준비를 해야 하는 만큼 누군가가 발포명령을 내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에 40년째 밝혀지지 않은 1980년 5월 당시 발포명령자 규명에도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18년 9월15일 광주지법은 조영대 신부 등이 전씨와 전두환 회고록을 출판한 전씨의 아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헬기사격과 관련해 '계엄군의 진압 활동을 고의적으로 왜곡하려는 사람들의 악의적인 주장'이라고 하거나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등으로 표현한 것은 조비오 신부와 조영대 신부 등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이에 법원은 손해배상 소송에서 전 전 대통령 등이 5월 3단체와 5·18기념재단에 각각 1500만원씩, 조영대 신부에게 1000만원 등 총 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또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서도 총 69개 표현을 삭제하지 않고는 출판과 배포 등을 금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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